롱블랙 프렌즈 C

성냥, 지우개, 돈봉투, 족자. 이 물건의 공통점이 뭘까요? 예전엔 우리 일상에 있었지만, 이제는 멀어지거나 사라져 가는 것들이에요.

이런 물건들을 되살리겠다는 브랜드가 있어요.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OIMU. ‘One Day I met You(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라는 문장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죠. ‘과거와 현재를 잇는 브랜드’라는 뜻이래요.

뜻은 꽤 거창하지만, 제품은 소소해요. 비즈니스가 될까 궁금했죠. 그런데 의외예요.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은 15%. 2024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49% 올랐어요! 민음사와 교보문고, 현대백화점, 삼성전자 같은 브랜드와의 협업도 끊이지 않죠.

비결이 뭘까요? 마침, 같은 질문을 품은 사람이 있었어요. 배달의민족과 네이버를 거친 마케팅 전문가, 이승희 브랜드 마케터였죠.

이승희 브랜드 마케터

요즘 ‘나의 고유함은 뭘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내 정체성마저 흐릿해지는 것 같아서요. 그럴 때 ‘내 고유함의 한 축은, 한국적인 일상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오이뮤에요. 팔각 성냥부터 복福 캔들, 한복 소재로 만든 책갈피처럼 소소한 일상의 물건을 만들어요. 그 안에 우리의 이야기와 정서를 담죠. 이들의 제품을 보면 이렇게 묻는 것 같아요. “당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건 무엇인가요?”라고.

이들과 더 대화하고 싶어졌어요. 서울 방배동의 사무실로 찾아갔죠. 부부이자 동업자인 신소현 대표와 전민성 실장을 만났어요.

방배동 사무실에서 만난 오이뮤의 제품들. 팔각성냥과 한복 소재 책갈피, 우리말 용어를 엮은 책, ‘복’ 자를 본뜬 캔들 등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담은 물건들이다. ⓒ롱블랙

Chapter 1.
표지판에서도 재미를 찾던 디자이너

오이뮤의 창업자는 1986년생의 신소현 대표예요. 신 대표는 말해요. “일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느끼던 어린 시절이 오이뮤로 이어졌다”고.

“길 가다 강아지 한 마리를 마주쳐도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코는 무슨 모양인지, 꼬리는 짧은지 긴지를 관찰했죠. 아버지와 산에 오를 땐 입구부터 정상까지 세워진 표지판은 죄다 읽고 가야 하는 성격이었고요.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에 재미를 느끼곤 했죠.”
_신소현 오이뮤 대표

일상의 재미를 눈에 담아온 덕일까요. 신 대표는 디자인이 좋아졌어요. 전공과 직장도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죠. 하지만 현실은 어린 시절의 낭만과는 달랐어요. 입시에, 취업에, 업무에 쫓기다 보니 일상을 들여다볼 틈이 사라졌죠.

“제가 주변을 주목하면서, 동시에 한 생각이 있어요. ‘나는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가.’ 이 생각이 저를 디자인으로 이끌었죠. 하지만 20대가 되자 상상처럼 살고 있지 않더군요.
자연스레 화두가 ‘자아 찾기’로 옮겨갔어요. ‘어떤 일이 가치 있고, 내가 세상에 어떻게 가치를 줄 수 있는지’ 고민했죠.”
_신소현 오이뮤 대표

신 대표는 28살이 된 2012년, 퇴사를 결심해요. 2년 넘게 일한 현대카드 브랜드 디자인팀을 떠났죠. 행선지는 미국. 다른 나라에 가면, 나에 대한 힌트를 얻을 것 같았거든요.

그가 실마리를 찾은 곳은, 미국의 서부 도시 포틀랜드Potland였어요. 당시 ‘로컬 브랜드의 성지’로 불리던 곳이었죠. 마트만 가도 커피, 맥주 같은 식품부터 생활용품, 공예품까지 집었다 하면 포장지엔 ‘포틀랜드’가 새겨져 있었어요. 지역의 전통이 ‘옛것’이 아니라, ‘일상’이 될 수 있단 걸 발견했죠.

“포틀랜드 사람들과 어울려 보니, 매일의 삶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었어요. 주말엔 포틀랜드 캠핑 브랜드 폴러Poler 장비를 들고 산에 올랐죠. 통나무 밑동에 둘러앉아 로컬 카페 스텀프타운Stumptown 원두로 커피를 마셨고요.
자연스레 우리나라 생각이 나더라고요. 우리도 좋은 문화와 제품이 많았는데, 사라지고 있는 게 아쉬웠어요. 내가 디자이너로 일할 거라면, 이런 것들에 디자인을 더해 지키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그게 제가 찾던 ‘의미 있는 삶’ 같았거든요.”
_신소현 오이뮤 대표

서울 방배동 오이뮤 사무실에서 만난 전민성 실장(왼쪽)과 신소현 대표. 오이뮤의 제품과 박스가 쌓인 사무실 한편에서 두 사람은 이승희 마케터와 이야기를 나눴다. ⓒ롱블랙

Chapter 2.
‘마지막 성냥’에서 창업의 실마리를 찾다

오이뮤의 시작은 ‘성냥 프로젝트’였어요. 신 대표가 미국에서 우연히 본 한국 다큐멘터리 덕이었죠. “한국의 몇 안 남은 성냥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었어요.

“화면 속 오밀조밀한 성냥들이 귀엽게 보였어요. 동시에 할머니 집에서 성냥을 켤 때의 두근거림과 몽글몽글함이 떠올랐죠. 이게 사라질 거라 생각하니 섭섭했어요. 이 감정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_신소현 오이뮤 대표

2013년, 신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성냥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곧장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성광성냥공업사를 찾아 경북 의성으로 내려갔죠. 하지만 이미 공장은 멈춘 상황.

성냥 구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프로젝트 시작 2년 후인 2015년에야 제품을 만들었을 정도로요. 마지막으로 남은 성냥 공장인 유엔상사*와 힘을 합쳤죠.
*1950년대부터 2010년까지, 팔각형 통에 담긴 ‘유엔팔각성냥’을 만든 성냥 회사.

처음부터 사업이 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디자인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직장인의 사이드 프로젝트였죠. 신 대표는 평일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주말엔 성냥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 씨름했어요.

2015년, 유엔상사를 찾은 신소현 대표. 연인이었던 전민성 실장은 성냥 공장을 찾아다니던 시절부터 신 대표를 도와 오이뮤를 만들어왔다. ⓒ오이뮤

디자인과 스토리가 붙으면, 제품은 다시 살아난다

성냥을 확보한 다음은 신 대표의 몫이었어요. 그는 사람들이 성냥을 다시 보게 하려면, 두 가지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과 ‘스토리’였죠.

“‘사람들이 언제 불을 붙일까’를 생각했어요. ‘축하할 때’와 ‘추모할 때’, ‘어둠을 밝힐 때’. 세 가지가 떠오르더군요. 자연스럽게 이걸 성냥갑 디자인에서부터 보이면 어떨까 했어요. ‘이걸 어디에 쓰지?’ 대신, ‘이럴 때 쓸 수 있겠네’라고 생각하도록요.”
_신소현 오이뮤 대표

그렇게 성냥갑에 일러스트를 그려 제품을 완성했어요. 예를 들어 축하용 성냥에는 비둘기 두 마리가 양쪽에서 끈을 물고 하트를 만드는 모습을, 추모용은 소국* 리스를 금박으로 새기는 식으로요.
*하나의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을 피우는 작은 국화. ‘스프레이국화’라고도 한다.

뒷면엔 마지막 성냥 공장인 유엔상사 로고를 넣었어요. ‘해방기 이후 팔각성냥을 생산해 왔던 유엔 상사에서 제작된 성냥이 들어있습니다’라는 문구도 함께요. 그렇게 2015년 3월 ‘오이뮤 사각성냥’이 탄생했어요.

오이뮤 사각성냥. 성냥갑에 ‘요즘 사람들이 불을 밝히는 순간’을 일러스트로 새겨 새로운 쓸모를 만들었다. ⓒ오이뮤

다음은 판매죠. 처음엔 다짜고짜 서울 편집숍을 찾아갔대요. 하지만 한 곳도 성냥을 받아주지 않았죠. 이유를 분석하던 신 대표. 물건을 팔 때 ‘이야기’가 빠져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좌절감에 빠져 있다가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화 한 통 없이 무작정 찾아가 제품만 보였거든요.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어리숙하게 굴어, 준비한 말도 제대로 못 했죠.”
_신소현 오이뮤 대표

깨달음을 얻은 신 대표, 곧장 제품 소개서를 만듭니다. 대신 전과 다르게 이야기를 풀었죠.

일단, ‘제품 설명’으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성냥 프로젝트’를 왜 했는지부터 설명했죠. 50년 넘게 성냥을 만든 유엔상사의 이야기와, ‘으뜸가는 선물’에서 ‘사양 산업’이 된 성냥 이야기를 더했어요. 공장 풍경 사진도 넣었죠.

그렇게 완성한 24쪽짜리 소개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신기하게도 편집숍으로부터 연락이 왔죠. 이런 이야기가 있는 성냥이라면 팔아보고 싶다는 거예요. 이때 깨달았어요. ‘제품을 왜 만들고,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한 과정’이 가장 강력한 이야기가 된다는 걸요.”
_신소현 오이뮤 대표

오이뮤가 편집숍에 보냈던 24쪽짜리 제품 소개서의 세 번째 페이지. 마지막 남은 성냥 공장인 유엔상사의 사진을 담았다. ⓒ오이뮤

이때부터 오이뮤는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 시작했어요. 성냥 자체가 생소했던 10~20대 고객들이 편집숍에서 오이뮤 성냥을 샀거든요. “써본 적은 없지만 그냥 갖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죠.

여기서 신 대표는 가능성을 발견해요. “이 정도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죠. 다니던 회사를 나옵니다.

“성냥으로 돈을 많이 벌 순 없었어요. 굶어 죽지만 않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되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죠.”
_신소현 오이뮤 대표

각오 덕일까요. 신 대표는 오래 지나지 않아 기회를 얻어요. 제품 론칭 5개월 만인 2015년 8월, 교보문고와 민음사로부터 제안을 받았거든요. ‘작가 성냥*’을 만들고 싶다는 의뢰였어요. 수량은 4000갑. 그 덕에 브랜드 론칭 첫해, 매출 6000만원을 얻었죠.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작가 5명을 모델로 성냥갑을 디자인했다.

민음사와 함께 교보문고 18주년 기념 굿즈로 만든 헤르만 헤세 ‘작가 성냥’. 오이뮤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민음사와 10년 넘게 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오이뮤

Chapter 3.
“귀엽다”가 튀어나오는 순간이, 영감의 원천이다

성냥으로 감을 잡은 신소현 대표는 오이뮤만의 결을 만들어 갔어요.

바로 다음 해인 2016년, 향香을 내놓았죠. 인센스 스틱이 생소했던 시절,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죠. 성냥보다 매출이 높았대요. 이 흐름을 타고 신 대표는 족자와 한복 소재 책갈피를 연이어 내놨죠.

개발할 제품을 고르는 원칙이 뭘까? 궁금해서 물었더니, 신 대표는 “귀여움을 느낀 순간을 붙잡는 것”이라고 말했죠.

“‘귀여워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보려고 해요. 이건 대상에 애정을 담아 보는 마음이기도 하거든요. 결국 그게 아이디어가 돼요. ‘귀여워’ 또는 ‘그거 귀여웠는데’라는 말이 나올 때가 타이밍인 거죠.”
_신소현 오이뮤 대표

그런 마음을 담아서 한 기획을 들려달라고 했어요. 신 대표는 2018년에 펼친 ‘지우개 프로젝트’를 들려줬죠. 지우개를 아카이빙한 책, 『Eraser 453』을 만든 프로젝트죠.

시작은 이래요. 어느 날 지우개가 필요해 화방에 갔는데, 네모난 지우개밖에 없었던 거죠. 신 대표는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어린 시절 귀여워 한 딸기, 강아지 모양의 지우개가 떠올랐어요. 그 귀여운 지우개는 다 어디 갔을까 싶었죠. 포장지에 적힌 공장에 전화하니, ‘이제 지우개가 안 팔려서 생산하기 쉬운 것만 만든다’는 거예요. 우리에겐 기회가 되겠다 싶었어요.”
_신소현 오이뮤 대표

신 대표는 곧장 대구의 화랑고무를 찾아갔어요. 자신이 기억한 ‘귀여운 지우개’를 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죠. 공장에서 그는 화랑고무가 70년간 만든 지우개가 든 상자들을 발견해요. 1000개에 달하는 지우개가 있었죠.

“상자를 열 때마다 금은보화가 쌓여 있는 것 같았어요. 귀여운 토끼, 수박 모양 지우개가 가득 들어있는 거예요. 이 귀한 걸 창고에 두고 싶지 않았어요. 그중 453가지 지우개를 골라 아카이빙 책을 만들었죠.”
_신소현 오이뮤 대표

신 대표와 전 실장이 화랑고무 공장에서 발견한 각양각색의 지우개들. 70년 동안 생산한 지우개 중 453개를 추려 생산연도와 크기 등을 기록해 책 『Eraser 453』으로 엮어냈다. ⓒ오이뮤

꼭 소품을 보고 귀여움을 발견하는 게 아니에요. 오이뮤는 2024년 12월, 손가방이자 북커버인 책冊(책) 손가방*’을 만들었어요.
*이하 책책 손가방.

이걸 기획한 계기는? ‘옛사람들이 책을 아끼던 마음 귀여워서’였죠. 이 감정, 소설가 이태준이 1941년에 쓴 수필을 읽다가 느꼈대요. 이 문장이었죠.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 대한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_이태준, 『무서록』, 「책」에서

신 대표는 이 문장을 읽고 ‘옛 애서가의 마음을 잇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어요. 이를 책책 손가방 디자인에 담았죠. 손때가 타지 않는 야암색* 천에 ‘冊(책)’이라는 한자 모양대로 누빔**을 줬죠. 딱딱한 것에 부딪혀도 책이 상하지 않도록요.
*아주 짙은 남색.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줄을 지어 박는 바느질.

“내게 소중한 감정을 주는 존재를 아끼는 마음이 ‘귀여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어떻게 그걸 오래 지키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까, 질문하게 되죠. 답을 찾으면 그게 제품으로 이어지고요. 그래서 저는 팀원들에게 늘 말해요. ‘귀여워하는 마음을 잃지 말자’고요.”
_신소현 오이뮤 대표

이승희 마케터가 쓰고 있는 책책 손가방. 늘 책을 들고 다니는 그는 “추운 겨울, 책책 손가방 안에 책을 포근히 감싸고 집을 나서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승희

Chapter 4.
소신만 내세우지 않기 위해, ‘기획 4원칙’을 세우다

하지만 모든 기획이 성공하는 건 아니에요. 신소현 대표도 말해요. 오이뮤의 모든 제품이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한 건 아니라고. 대신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었죠. 기획을 현실화할 때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어요.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제품을 내놨는지 돌아봤어요. 네 가지로 정리가 됐죠. 이 기준을 채우면, 저희가 소신도 상업성도 잃지 않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_전민성 오이뮤 실장

이들이 정리한 네 가지 기준은 아래와 같아요.

① 한국적인 정서를 잇는 소재인가
② 디자인으로 재해석할 여지가 있는가
③ 신기한가
④ 비즈니스 확장성이 있는가

이걸 충족한 제품은 2020년 오이뮤가 내놓은 책, 『색이름 352』에요. 제가 오이뮤라는 이름을 처음 인식한 제품이기도 하죠.

일단 『색이름 352』의 소재는 ‘우리말’이에요. 352가지 색의 우리말 이름을 정리한 책이죠. ‘상록수색’, ‘석류색’, ‘심해색’ 처럼 잊힌 우리말 이름을 정리한 건 물론, ‘브라운 올리브brown olive’ 색을 ‘톳색’으로 바꿔 제안했어요. 한국적인 정서를 이었죠.

단순히 색이름만 써 내려간 건 아니에요. 성냥갑에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디자인을 더했죠. 나팔꽃색은 나팔꽃을 그려 색칠했고, 볏짚색은 볏짚으로 만든 모자를 그려 넣었어요. 디자인으로 재해석을 한 거예요.

2020년 오이뮤가 출간한 『색이름 352』. 우리말 색이름 352가지를 일러스트와 함께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 ⓒ오이뮤

여기서 궁금해져서 물었어요. “신기함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나요?”

“‘상상도 못 한 걸 내놓자’는 건 아니에요. 제품을 낼 때 우리에게 ‘낯설면서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가 신기함을 판단하는 기준이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지금의 우리는 베이지나 크림색 같은 이름에 익숙해요. 그런데 같은 색을 표현하는 누룽지색이나 연근색을 들으면 신기하게 느껴지죠.”
_전민성 오이뮤 실장

마지막 기준인 비즈니스 확장성은, 사업 성과와 연결돼요. 오이뮤는 『색이름 352』 책과 함께 파도색, 안개색 같은 색이름을 딴 노방* 머리끈을 내놨어요. 연근색과 복숭아꽃색의 노방 책갈피도 출시했죠. 책을 읽은 이들의 관심을 자연스레 제품으로 연결한 거죠.
*비단실로 만든 직물로, 한복의 옷감으로 쓰이던 소재. 오이뮤에선 세탁과 다림질이 가능하도록 폴리에스터로 만든 대체 원단인 ‘물노방’을 쓴다.

안개색 노방 머리끈. 『색이름 352』의에 실린 색이름들은 오이뮤의 다른 제품으로도 이어졌다.ⓒ오이뮤

곰탕을 끓이듯 만든 제품이, 선택받는다

물론 네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건 어려워요. 신 대표와 전 실장은 말합니다. “그래서 제품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예를 들어 색이름 프로젝트가 아이디어에서 제품이 되기까지는 2년, 지우개 프로젝트는 3년이 걸렸어요.

신 대표는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곰탕을 끓이는 것처럼 기획을 한다”고요.

색이름 프로젝트도 그래요. 신 대표는 1991년 출판됐다 절판된 ‘우리말색이름사전*’ 저자를 찾아 그가 갖고 있던 책을 사 왔어요.
*한국색채연구소에서 우리말 색이름을 모아 펴낸 책으로, 2006년에 나온 개정판도 절판되었다.

이 책을 보고,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이름이나 외국어 이름은 모두 우리말로 새로 지었어요. 또 문학 작가와 협업해 색이 전하는 감각을 표현한 글도 실었어요. 즉, ‘우리말 색이름’을 가장 잘 전할 수 있을 때까지 기획을 계속한 거죠.

“제품을 곰탕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원하는 맛이 날 때까지 끓이고 또 끓이는 거예요. 불 올린 것도 잊지 않고 살피면서요. 물론 하나만 끓이며 기다리진 않아요. 여러 개를 계속 끓입니다. 결국 좋은 제품 기획법은 ‘성실’로 이어져요. 이걸 그보다 더 잘 표현하는 말은 없죠.”
_신소현 오이뮤 대표

오이뮤는 이슬아, 김겨울 등 젊은 문학 작가들과 협업해, ‘색의 감각을 전하는 글’을 『색이름 352』에 실었다. 사진은 마윤지 시인이 쓴 금색에 대한 글. ⓒ오이뮤

Chapter 5.
‘우리가 보냈던 일상’이 곧 한국적인 것이다

10년간 브랜드를 이어온 오이뮤의 목표는 뭘까요? 신소현 대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했죠. 디자인과 이야기로 한국적인 정서를 잇는 존재를 만드는 거죠. 그 존재가 사라지지 않도록요.

문득 오이뮤가 정의하는 ‘한국적인 것’이 뭔지 궁금했어요. “우리 역사에 남아 있는 전통일까요”라고 묻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죠. 우리가 전통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단 거예요.

예를 들어, 2024년 설을 앞두고 만든 복福자가 새겨진 돈봉투, 2024년 11월에 출간한 239개 산을 소개한 책 『산 239』가 그래요. 이 제품들은 무작정 “전통을 지켰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한국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죠.

“어른들이 명절 때 빳빳한 돈봉투에 돈을 넣어 용돈을 주고받는 건, 돈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였어요. 가족을 생각하는 소중한 마음이 담겨 있었죠. 산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존재예요. 단지 우리가 살다 보면 존재를 잊을 뿐이죠.”
_신소현 오이뮤 대표

오이뮤가 출시한 돈봉투인 ‘복 봉투’. 마음을 담아 돈을 주고받는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를 담은 제품이다. ⓒ오이뮤

신 대표는 시장에 쌓인 과일 상자, 축하 화분에 붙은 리본과 글씨체, 길에 떨어진 전단지 같은 것도 ‘한국적인 것’이라고 소개했어요. 이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면, 오이뮤가 주목할 소재가 될 수 있다고도 했죠.

“저는 한국인의 일상을 담는 모든 것들이 한국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키고픈 ‘한국스러움’ 역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남긴 일상의 모습이죠.
저는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과 따뜻함에 주목하고 싶어요. 어린 시절 표지판을 뜯어보던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크게 다르지 않죠.”
_신소현 오이뮤 대표

2025년 3월에 10주년을 맞이하는 오이뮤. 신소현 대표와 전민성 실장은 “사라져가는 것들은 아직도 많기에, 오이뮤가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말한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C

오이뮤가 고유성을 계속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브랜드의 시작이 ‘내게 가치 있는 일’을 찾는 여정이었기 때문이죠. 그 가치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소중한 가치였기에 그 일이 사업으로 이어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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